<프래그>는 2016년 프레셔스 플라스틱 오픈소스로 공개된 도면을 활용해 분쇄기, 사출기, 압출기를 제작하였습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접하고 친환경 제품을 제작하는 ‘장치’를 제작한다는 개념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도면을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고 제작 설명을 살펴보자마자 장비를 제작하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일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2016년부터 서울 중구청에서 진행한 을지로 디자인예술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산림동으로 작업실을 이전하였습니다. 현재는 재개발로 사라지고 없지만 을지로 일대는 도심제조지역으로 입정동에는 비철금속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신림동에는 철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청계천 북쪽 장사동에는 히터와 센서 등 온도 컨트롤러를 판매하는 상점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우리는 지역의 장인분들의 도움으로 프레셔스 플라스틱 장치를 쉽게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에서 2018년 사업 초기엔 주로 압출기를 활용해 플라스틱을 성형하였습니다. 모터를 회전시켜 녹인 플라스틱을 굵은 국수발처럼 뽑아내는 압출기는 반응이 즉각적이었고 새로운 금형제작에 대한 비용부담이 없었습니다.
2019년 본인의 디자인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하고 싶어 하는 고객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하지만 프레셔스 플라스틱 오픈소스 사출기는 사람이 직접 레버를 지렛대 원리로 내려 녹인 플라스틱을 금형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방식은 다른 외부 동력 장치가 사용되지 않아 사출기 제작이 간단하지만 1개의 사출물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사람의 힘과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 지속적으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기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사업화를 위해서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장치와 설비의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플라스틱 사출산업의 장비와 같이 유압과 서보모터로 작동하는 사출기를 만들기에는 기술적, 비용적 한계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프레셔스 플라스틱 오픈소스와 같이 적은 비용과 설비로 공예적 방식으로 생산 가능한 장치의 개발을 위해 고민하였습니다. 녹인 플라스틱을 사람이 아닌 기계 장치가 눌러 플라스틱을 토출시키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 을지로4가 미싱거리에서 공기압을 활용해 수직으로 금속 기둥이 내려와 의류 부자재를 강하게 눌러 리벳팅하는 장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공기압의 힘으로 선형으로 움직이는 기구가 에어실린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해당 장치로 플라스틱을 사출하는 소형 장치들에 대한 정보를 구글을 통해 찾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압식 사출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19년부터 공압식 사출기를 제작하면서 2022년 4월 우리가 사용하는 공압식 사출기의 도면, 조립도, BOM을 작성해 오픈소스로 공개하였습니다. 현재는 기구부에 대한 도면만 정리되어 있지만 추후 전기부와 사출작업에 대한 내용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압식 사출기 오픈소스
(https://pragcorp.notion.site/OPEN-SOURCE-5e8af4756ad04d3585755006f9653e3a)
을지로에는 크고 작은 배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많았습니다. 배지는 금형, 프레스, 도금, 칠의 순으로 공정이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이중 배지의 프레스 금형을 가공하는 공장을 찾아 초창기 플라스틱 사출 금형의 제작을 의뢰하여 금형들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머시닝센터를 활용해 알루미늄을 가공해 좀더 정교한 형태의 금형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형태에 따라 방전가공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제품 내 글자를 새길 때에는 레이저를 활용해 각인합니다.
금형을 제작하는 데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탈형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해 금형을 제작합니다. 사출 방식에 따라 언더컷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구배를 적절하게 주어 사출물이 금형에서 쉽게 분리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사출 작업 시 고려해야 할 요소는 크게 온도, 압력, 소재, 시간입니다.
우리는 주로 열가소성 플라스틱 중 PP와 PE를 재활용합니다. 같은 PP라고 할지라도 용도에 따라 유동성 지수와 물성이 다릅니다. 사출용 PP와 압출용 PP는 같은 PP라도 유동성 지수 등의 차이 때문에 사출 작업 시 필요한 온도와 압력에서 많은 차이가 납니다. 보통 재활용 시 PP와 PE 등 소재를 구분해 사출을 하게 되는 데 더 나은 작업을 위해서 소재의 구분과 동시에 가공방법(사출, 진공성형, 압출, 블로잉)에 따른 유동성 지수를 추측해 사출할 것인지 시트 프레스할 것인지 정하면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소재에 맞춘 적절한 온도로 작업해야 합니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사출물의 변형이 심하고, 가스가 많이 생겨 작업환경이 나빠지며 사출 시 금형 파팅라인으로 플라스틱이 액상으로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전력소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온도가 낮을수록 사출물이 빠르게 식고 상대적으로 플라스틱의 변형 또한 많지 않지만 온도가 낮으면 금형 내 플라스틱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생겨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오히려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금형의 온도도 확인해야 합니다. 금형이 충분히 데워지지 않으면 플라스틱이 흘러가다 굳게 되면서 금형 내 플라스틱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금형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사출물의 식는 시간이 오래 걸려 생산성을 저하시키게 됩니다.
공압식 사출기는 공압의 힘을 활용해 사출하게 됩니다. 공압의 힘이 약할수록 금형에 플라스틱을 주입하는 힘이 약해져 플라스틱을 충분히 금형 내에 채우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판매하는 압축공기를 생성하는 에어컴프레셔는 최대 8bar의 압력을 내고 6bar 미만으로 압력이 떨어지면 모터가 돌아가면서 공기를 보충하게 됩니다. 10bar 이상의 압력을 활용하고 싶다면 준고압 에어컴프레셔를 설치해야 하는데 작업 효율이 개선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용이 상대적으로 고가이고 충분한 공간과 전력량이 필요합니다.
작업 시 소재와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힘은 강할수록 좋습니다. 다만 현재 사용하는 장치에 설치된 에어실린더가 권장하는 사용 압력을 확인하여 압력을 늘려야 하며 사용하는 공기의 양에 맞춰 에어콤프레셔의 에어탱크의 크기를 정해야 합니다.
사출 시 플라스틱 주입 시간과 플라스틱 주입 후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해 식혀주는 시간을 기록해야 합니다. 이 작업을 해야 사출물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특히 표면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압력을 가해 식혀주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에어실린더를 작동하는 밸브를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솔레노이드밸브로 교체하고 타이머를 장착해 자동화시키거나, 직접 스톱워치를 사용해 적정 시간을 측정하고 작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우리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지원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1) 금형 2) 온도와 압력 3) 소재와 사출 등 프로그램을 총 3회로 구성해 처음 플라스틱 재활용 작업을 접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총 4기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플라스틱 재활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2021년 4월부터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사출 서비스 ‘노플라스틱선데이’를 런칭하였습니다.
노플라스틱선데이의 이름은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실천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플라스틱이 미래 환경의 위협이 되는 시대. 노플라스틱선데이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듭니다. 버려지는 작은 플라스틱을 시민의 참여로 수집하고, 오픈 소스를 활용해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들을 공유하고, 지역 자활센터와 연계하여 자원 순환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노플라스틱선데이는 현재까지 약 200개 이상의 팀과 협업하여 약 28만 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약 5000kg 이상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였습니다.
먼저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분쇄 또는 펠렛화를 통해 소재화시키고 그 후 제품화를 통해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주문제작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의 경우 크게 1) 판매용 제품 2) 판촉용 제품으로 제작하였습니다.
판매용 제품으로는 이니스프리와 함께 제작한 비누받침, 칫솔꽂이, 키링, 튜브짜개가 있습니다. 이니스프리에서 수거한 공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제작하였습니다. 특히 삼청동에 위치한 이니스프리의 공병공간을 리뉴얼하는 작업을 통해 고객이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습니다.
최근 ESG 경영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캠페인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중 시민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판촉용 제품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함께 택배박스의 운송장과 테이프를 제거해주는 도구를 제작하여 4곳의 제로웨이스트샵을 통해 친환경 캠페인에 참여하는 시민 1000명에게 나눠드렸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 숲 키링, 튜브짜개, 비누받침, 칫솔꽂이 등을 자체 개발해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자제 개발된 제품들은 플라스틱 재활용 제품의 구매를 원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대량구매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화성의 플라스틱 재생 펠렛 공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산처럼 쌓여 운동장 크기의 창고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당면한 환경문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치로 인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전에 무기력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들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동료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21년 이니스프리와 제작한 비누받침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제작한 박장떼소 (2022년)
다양하게 조립 가능한 플라스틱 숲 키링
자체 디자인 및 생산하고 있는 튜브자개, 비누받침, 칫솔꽂이